[硏代] 한국개발연구원법 제정 50년: 기록으로 보는 125일

한국개발연구원의 연사(硏史)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한국개발연구원법(법률 제2274) 제정 공포(1970.12. 31.)
한국개발연구원법은 1999년 '정부출연연구기관 설립 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연구회 체제가 도입되기전까지 한국개발연구원 설립의 근거법으로 유지되어온 법률이다.
이 법률의 제정과 공포를 통해 연구원이 설립되었으며 국가의 경제 계획과 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추진력을 얻었다. 하지만 이 법률이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과정과 역사에 대해서는 연구원 내 관련 기록은 전무하고 그동안의 연사에도 보고된 바가 없다.
2020년. 한국개발연구원 법률 제정 50주년을 기념하여 관련 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록을 중심으로 연구원의 시작에 담긴 125일의 여정(1970년 8월 28일 - 1970년 12월 31일)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당면한 과제는 한국의 경제 현안에 맞는 전문적인 연구 분석과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싱크탱크의 필요였다.
경제개발 계획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수집과 모델 분석이 얼마나 중요하고, 지속적인 계획 수립을 위해 전문적인 브레인 집단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구체화되었다. 이후 제2차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국내외 석학의 권고와 정부의 의견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공식화되었다.
(경제연구소의 설치) -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215. (경제연구소의 설치) 계획과 집행에 관한 정부의 전문적 기술적인 능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햐여 조속한 시일안에 <경제연구소>를 설치하도록 한다. 이 연구소는 자원의 평가, 분석, 국부조사 등과 같은 기초조사와 해외경제조사, 정책유도를 위한 문제의 연구 그리고 그 밖의 계획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료를 정비, 분석하고 계획기술을 발전시켜 나아간다. 이밖에도 경제발전이 촉진됨에 따라 점증하는 경제계획 입안자 및 전문가를 위한 훈련기관으로서 또 정부와 학계 및 각 연구소를 연결하는 교량으로서의 역할을 지니게 된다. 이 연구소는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고 그 연구 조사의 결과는 높은 질적수준과 객관성이 확보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그러나 경제연구소의 설립이 본격적으로 검토된 시점은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제2차 경제개발 계획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어려운 재정 형편으로 인한 재원 부족과 연구소의 독립성 인프라를 확보하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표류하고 있었다.
경제연구소의 설립에 실무적인 관심을 가진 김만제 박사와 이희일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은 미국의 민간 재단으로부터 재원 확보의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지원을 받지 못했다. 마침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재직하고 있던 김학렬 차관이 1969년 경제기획원장 겸 경제부총리로 취임하면서 다시금 경제연구소의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김학렬 부총리는 경제연구소의 설립을 위한 적극적인 기금 확보 노력으로 USAID의 자금을 활용하는 안을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재가를 받았다. 경제연구소의 설립에 추진력을 얻은 김학렬 부총리는 설립의 근거가 되는 법률 작성을 경제기획원 내부에서 진행하였고, 경제기획국 종합기획과(이응수 과장, 이정보 사무관, 강봉균 사무관)에서 세부적인 작성 절차를 진행하였다.
경제기획원에서 작성된 법안은 제40차 경제장관회의에 제출 및 합의되었고,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제65회 국무회의(1970.8.28.)에 제출되었다. 국무회의에 상정하는 단계는 정부에서 입법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수행하는 절차이다.
이때 제출된 법안의 이름은 '국립개발연구원법(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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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소장(BA0084621) |
국가기록원 소장(BA0084621) |
"김학렬 부총리께서는 정부출연 연구소로 출발을 하니까 연구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국립'이라는 말을 넣어 '국립한국개발연구원'이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었어요." — 초대원장 김만제 박사의 회고. 홍릉 숲 속의 경제 브레인들, 37-38쪽.
그러나 1970년 8월 28일에 개최된 제65회 국무회의에서는 법안 명칭을 국립개발연구원법에서 '한국개발연구원법'으로 수정할 것을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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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소장(BA0084621) |
국가기록원 소장(BA0085267) |
국무회의에서 수정 결의된 한국개발연구원법은 대통령의 서명 후 1970년 9월 8일 정식으로 제7대 국회(1967년-1971년) 제75회에 제출되었다.
한국개발연구원법을 제출받은 국회에서는 이후 입법 절차에 따라 상임위원회(재정경제위원회)로 회부(1970.9.10.)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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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소장(EA0011789) |
국회기록보존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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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사무처에서 상임위원회(재정경제위원회)로 회부하는 문서 국회기록보존소 소장 |
1970년 11월 10일. 회의장에 마른 체격의 어느 한 관료가 발언대에 섰다. 그 관료의 눈빛은 날카로우며 때로는 반짝거린다. 긴장감으로 가득한 적막 속에서 그가 말한다. 김학렬 경제부총리였다.
"오늘 한국개발연구원 설립을 위한 법안을 제안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충실한 개발과 번영을 기하기 위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분석에 기초를 둔 경제개발계획과 정책의 수립 집행이 더욱 요청되고 있습니다. (중략) 본 연구원은 제2차 5개년 계획서에서 언급되어 작성 당시에 설립하도록 구상되었던 것이며, 그동안 이를 위해 준비를 해왔던 것입니다. 이제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70년대의 개발과 번영을 뒷받침하게 될 본 연구원을 설립하게 됨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 김학렬(경제기획원장 겸 경제부총리)의 발언. 제75회 국회 제10차 재정경제위원회.
그의 발언이 끝나고 전문위원의 보고가 끝나자 수많은 의원들로부터 거침없는 질문공세가 이어진다.
'우리의 경제・재정적인 여건 속에서 연구원의 설립이 적절하다고 보는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도 경제연구전담부서가 존재하는데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 어떤지?'
'연구원의 독립성이나 중립성 보장에 대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는지?'
'(막대한 재정투자에 비해)30~100명정도의 인적 구성 계획이 허술한 것은 아닌지?'
'국유재산 양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지?'
'경제기획원에서 개발업무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데 중복해서 설립을 하는 것은 아닌지?'
'초대원장과 이사들을 경제기획원장이 선임하면 경제에 대한 혁신적인 견해가 나올 수 있는지?'
그의 답변은 어땠을까.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의 인문과학계통에 있어서 한가지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분석을 하는 그와 같은 연구기관의 설립이라는 것이 절실히 요청되어 왔습니다. (중략) KIST는 과학과 기술 계통에 치중하는 연구소로서 (한국개발연구원을) 설립할 계획을 세운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훌륭한 연구원들에 대해 쓸데 없는 간섭을 함으로써 (중략) 당초의 설립 목적과도 다른 결과가 나타낸데가 간혹 있기 때문에 (중략) 이 기관이 (정부의) 시녀 노릇을 해서는 안되겠다 (중략) 중립성을 가짐으로써 한번 멋지게 운영되는 그와 같은 면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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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기록보존소 소장 |
국회기록보존소 소장 |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김학렬 경제부총리는 때로는 겸허의 자세로 마주하는 한편 때로는 연구원의 설립에 대한 냉철한 소신을 피력하였다. 그 결과 연구원의 기능에 '정부에서 필요한 연구 용역의 수행(수탁)' 기능을 추가하여 통과하였다.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수정가결된 한국개발연구원법은 후속 절차에 따라 법제사법위원회로 이송되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상임위를 거쳐 올라온 법안이 충돌하지 않는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지 등을 검토하고 정비하는 체계 및 자구 심사 과정을 거치는 절차였다.
이송된 한국개발연구원법은 제75회 국회 제8차 법제사법위원회(1970.11.30.)에서 심의되었고 체계 및 자구 심사를 거쳐 다시 상임위원회인 재정경제위원회로 회부되었다. 재정경제위원회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회신받은 심사 결과를 다시 국회의장에게 보고하는 과정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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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기록보존소 소장 |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결과를 재정경제위원장에게 통보하는 문서 국회기록보존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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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기록보존소 소장 |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거쳐 심사한 결과를 재정경제위원회에서 국회의장에게 보고하는 문서 국회기록보존소 소장 |
제출된 한국개발연구원법은 제75회 국회 제16차 본회의(1970.12.17.) 상정 및 결의되었다. 그리고 최종 수정 결의된 법안을 대통령과 법제처로 이송하였다. 법제처에서는 법안의 공포를 위해 제98회 국무회의(1970.12.29.)에 상정하였고, 국무회의에서 최종 공포가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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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기록보존소 소장 |
국회기록보존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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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소장 |
"국회에서 의결된 한국개발연구원법을 이에 공포한다."
1970년 12월 31일. 1970년의 마지막 날.
누군가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외치며 새롭게 다가오는 희망의 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을 외쳤지만, 누군가는 글로벌 싱크탱크라는 위대한 탄생을 염원하는 카운트다운을 외쳤다.연사(硏史)의 시작이었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법은 약 30여년간 연구원 설립의 근거법으로 유지되어오다가 1999년 '정부출연연구기관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폐지되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그 날의 울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의 씨앗으로 남아 있으리라.
국가기록원 소장